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일톤 세나 (문단 편집) === 인간적인 면모 === [[파일:senna 26.jpg]] 측근들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사려깊고 정의감이 강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그런데 이건 레이스카 밖에서의 이야기이고 레이스카에만 올라타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약 피트에서 마샬들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아주 조급해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레이스카가 달려오는 목숨이 위험한 서킷 한 가운데를 달려가 부상당한 드라이버를 구출하고 후배 드라이버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조언하고 챙겨줄 만큼 '''자신의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하느님 얘기를 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레이스에서 우승하면 꼭 하는 얘기중 하나가 신에 대한 감사. 그는 항상 레이스에 나서기 전에 차에 앉아서 기도를 하곤 했다. [[파일:senna 27.jpg]]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남달라서 항상 브라질 국기를 들고 다니며 레이스마다 흔들곤 했다. 또한 그는 당시 막장의 끝을 달리던 브라질의 국가상태[* 1990년대 초반 브라질은 군사독재정권이 끝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천 단위의 인플레이션 상승률로 경제가 막장이 되어 화폐개혁까지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고통을 받았다.]와 거기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항상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 아이르통 세나 재단.''' 빈민층 아이들에게 교육과 지원을 베풀고 여러 꿈을 가진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의 안정적 사회 진출을 돕는다.]을 뒷받침 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는 항상 이 세나 재단을 홍보하는 티셔츠를 입고 그리드를 돌아다녔으며 틈만 나면 요트에 가득 먹을 것과 생필품을 실어서 시골의 아이들에게 가곤 했다. 또 그는 자선 기금을 위해 F1 드라이버들을 불러 모아 돔 구장 안에다 카팅 서킷을 만들어놓고 팬들을 불러다 친선 카팅 경기를 열기도 했다. 사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생전에 '''익명으로''' 사재[* 사망 당시 4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를 털어 빈민층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그의 사후 세나 재단은 누나인 비비안느 세나가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죽음 이후 브라질 정부가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던 브라질의 나라 상태를 생각하면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불안정한 조국을 아끼고 국제 무대에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은 브라질 국민에게 뜨거운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는 팬들이나 드라이버들에게 레이싱 드라이버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매력적인 면들이 있었다. F1 특유의 정치적인 환경에 대해 불편함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최대한 정치색이 배제된 '''순수한 의미에서의 경쟁을 추구'''했다는 점, 모터스포츠가 가지는 태생적 위험을 인식하고 사고로 다친 드라이버들을 챙기는 등 '''직업정신과 동업자 정신이 투철'''했다는 점, 당시 국제무대에서 밝히기 꺼려지던 브라질이라는 국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브라질의 가난한 아이들을 아꼈던 점,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F1 레이싱에 엄청난 열정을 보여줬다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후대 드라이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